왕이 된 어린 소년
1441년 음력 7월 23일, 세종대왕의 손자이자 문종의 외아들로 태어난 단종은 조선 제6대 왕이 된다. 1452년, 아버지 문종이 승하하자 겨우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그의 본관은 전주, 휘는 홍위()였다[1].

하지만 어린 왕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없었다. 단종의 모후는 그를 낳다가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할머니 소헌왕후 역시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보다 먼저 사망해 수렴청정을 할 사람이 없었다[2].
결국 어린 국왕의 후원은 문종이 후사를 부탁한 대신들이 맡게 된다. 문종의 고명을 받은 대신들과 세종의 부탁을 받은 집현전 학사 출신들이 단종을 보좌했다.
위기에 처한 왕권
어린 단종의 즉위 이래 정국은 불안해졌다. 위축된 왕권과 달리 수양대군 등 종친의 세력은 나날이 팽창해 갔다. 특히 인사 문제는 고명대신들에 의한 ‘황표정사()’라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3].
단종 1년(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일어난다. 이날 단종의 보호자와 지지자 상당수가 살해당하거나 유배되면서 단종은 세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다. 계유정난은 기존의 정변들과 달리 내세울 만한 명분이 극히 취약했다. 고명대신파의 황표정사에 의한 국정 전단이 구실이 되었으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가까웠다.
왕위를 빼앗기다
1455년, 숙부 세조의 정변으로 단종은 양위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단종은 왕세손, 왕세자, 국왕, 상왕, 그리고 노산군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신분 변화를 겪게 된다[4].
1454년에 수양대군이 금성대군을 비롯한 단종의 나머지 측근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유배하는 일이 일어나자, 계유정난을 계기로 일부 신료들은 단종이 양위해야 된다는 공론을 세웠고 이는 통과되었다.
이후 단종은 영월로 유배되고, 세조 측근들의 탄핵으로 왕에서 폐위된다. 그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보호자들인 혜빈 양씨와 금성대군도 죽임을 당한다. 유일한 동복누이인 경혜공주 역시 비극적인 삶을 살다 일찍 요절하고 만다.

역사 속 비극의 왕
단종의 비극은 영국의 에드워드 5세와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실 왕비이자 왕대비인 친모가 결국 복수에 성공하며 동복 형제자매들 일부가 살아남고 그 자손이 번성하는 에드워드 5세와 달리, 단종은 문종까지 죽은 후 든든한 가족 하나 없이 즉위했다가 왕위를 뺏긴 후 되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5].
단종은 1457년 음력 10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비극적인 삶은 권력의 허무함과 명분, 그리고 희생된 자들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했던 왕의 무게와 그로 인해 펼쳐진 비극적인 역사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교훈을 남기고 있다[6].
그의 명예는 훗날 숙종 때 복권되면서 회복되지만, 12세의 소년이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삶은 조선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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